의열단 실화 영화 <밀정> 줄거리 및 리뷰. 김원봉 정보


출연-배우들의-사진
밀정 포스터

영화 '밀정'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일제강점기 독립단체인 의열단과 밀정 간의 갈등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오늘 리뷰는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과 그 외 독립단체 의열단의 활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소개해보겠습니다. 또 의열단의 단장이자 독립운동의 중심인물이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김원봉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황옥 경부 폭탄 사건' 실제 인물 실화 바탕

영화 '밀정'은 원작 소설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영화는 실제 사건이었던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베이스로 '의열단'과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 활동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갈등들을 담고 있다. 후반부로 긴장감이 고조되며 몰입도가 뛰어난 작품이다. 실제 인물 황옥을 모티브로 한 등장인물 이정출은 임시정부의 통역일을 담당하다가 배신하고 일본의 밀정이 되어 경찰 고위급인 경무국 경부가 된다. 일본제국은 이정출이 조선인 출신이고 임시정부 활동을 했던 점을 이용해 의열단에 가입해 이중 스파이 활동을 하도록 한다. 실제 인물 김시현을 모티브로 한 등장인물 김우진은 의열단원들의 리더로 독립운동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이정출과 김우진은 서로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지만 이미 서로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경무국의 압박으로 의열단의 활동이 점차 힘들어지게 되고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이 힘들어진다. 의열단은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가져올 계획을 세운다.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김우진은 폭탄을 운반하는 일이 매우 위험한 계획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경무국 경부 이정출의 도움을 받아 실행할 계획을 세운다. 당시 총독부 경무국으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던 이정출은 고민 끝에 의열단의 계획에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주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정출과 김우진 그리고 의열단이 힘을 합쳐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운반하는 계획이 실행되고 그 뒤를 바짝 쫓는 일제 경찰들은 같은 기차에 타게 된다. 하지만 의열단 내에 또 다른 밀정이 있었고 의열단은 계획을 실패할 위기에 처한다. 김우진이 기지를 발휘해 단원들 중 밀정을 찾아내 처단하고 이정출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경성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모든 정보를 확보한 경무국에서 경성역에 경찰병력을 배치해 둔 상태였다. 의열단은 경찰에 맞서 저항하지만 결국 일제 경찰에 의해 사살되거나 체포된다. 다행히도 폭탄을 경성으로 반입하는 데는 성공했고 경찰에 체포되지 않은 김우진은 폭탄을 숨기고 자신도 은신한다. 그러나 또 다른 밀정에 의해 김우진과 이정출은 함정에 빠지게 되고 이번에는 도망가지 못하고 결국 체포당하고 만다. 이정출과 의열단원들의 재판이 열리게 되고 일제는 이정출에게 죄를 묻는다. 이정출은 자신은 절대 의열단의 멤버가 아니며 일본제국의 경찰로서 임무수행을 위해 활동한 것이라 읍소한다. 결국 이정출은 징역 1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김우진의 계획이었다. 김우진이 경찰에게 체포될 당시 이정출에게 끝까지 정체를 숨기고 의열단의 임무를 완수해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이정출은 출소 후 김우진이 숨겨 둔 폭탄을 찾아 일본 고위 관료와 친일파들이 대거 참석하는 연회장에 잠입해 임무를 완수한다.

항일 무장 단체 '의열단'

의열단은 1919년 11월 단장 김원봉을 필두로 신흥 무관 학교 출신 인사 13명을 중심으로 만주에서 조직된 항일 무력 독립운동 단체이다. 의열단의 명칭의 의미는 정의를 맹렬하게 추진하는 단체라는 뜻이다. 의열단은 결사대를 조직해 민중 직접 혁명론을 주장하며 일제의 주요 기관 파괴 및 주요 인물 제거해 국민들의 독립의지를 확고히 하여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목표로 삼았다. 비밀 조직이었던 의열단의 단원 수는 정확하게 파악되진 않지만 대략 2000여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1920년부터 의열단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1920년 9월 박재혁은 부산경찰서를 폭파하고 서장을 제거했다. 그 해 12월 최수봉은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영화 밀정 마지막 장면에 이정출이 선길에게 폭탄을 전해주고 선길은 자전거에 폭탄을 싣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향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장면은 1921년 9월 김익상의 조선 총독부 건물 폭탄 투척 의거를 모티브로 한 장면으로 보인다. 또 영화 밀정 도입부에 '김장옥'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는 의열단 김상옥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김상옥은 조선 최고의 총잡이라고 불렸으며 실제로 김상옥을 잡기 위해 경찰 1000명이 동원되어 3시간이 넘게 총격전을 벌이다 체포되기 전에 자결하였다고 한다. 김상옥은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1926년 12월에는 나석주가 동양 척식 주식회사와 조선 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 후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순국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으로 알려진 이육사도 의열단의 일원이었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돼 3년간 투옥되었는데 이때 죄수번호가 264번이었다. 본래 이육사의 본명은 따로 있었는데 투옥 이후 의열단에 가입하게 되면서 로 죄수번호를 따서 이육사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규모 저항으로 부족하다고 느낀 의열단은 중국의 도움을 받아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황포 군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의열단은 해체된다.

'의열단' 단장 김원봉

김원봉은 의열단의 중심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어 간 인물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투쟁했지만 그는 최근에서야 조금씩 조명받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독립운동의 선구자라고 생각하는 김구와 비교될 만큼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 위협이 되는 인물이 바로 김원봉이었다. 21세의 나이로 의열단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김원봉은 중국으로 넘어가 공산당과 협력하게 되면서 공산주의를 접하게 된다. 좌익은 김원봉을 필두로 우익은 김구를 필두로 독립운동이 전개된다. 김원봉은 무력투쟁 중심의 독립운동을 추구했기에 우익의 임시정부활동을 비판하기도 하면서 우익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1940년대 좌익세력 내에서 김원봉이 배척당하게 되면서 1942년 임시정부에 합류하게 되고 1945년 광복을 맞이한다. 광복 이후 남한에서 단체를 조직해 좌익성향 활동을 이어가려 하지만 우익 성향의 미군정과 다른 조직들에 의해 배척된다. 결국 1948년 김원봉은 월북을 하게 되지만 북한에서도 세력 싸움에 밀려 1958년 김일성에 의해 숙청된다. 1980년대까지도 대한민국에서 반공산주의 팽배했기 때문에 스스로 월북을 선택한 김원봉은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힌 것이다. 남한에 거주하던 김원봉의 가족들은 정부에 의해 고문당하고 형제들은 암살당하기도 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했지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고통만 남아버린 것이다. 반면 그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김구는 현재 효창공원에 그를 기리는 묘소와 함께 기념관이 설립되어 있다. 최근 들어서 영화 '암살'이나 '밀정' 등을 통해 김원봉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해 그에 대한 평가가 바뀌는 추세다. 정치적인 이념에 가려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던 과거가 안타깝다. 김원봉, 그는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일생을 바쳤으며 누구보다 용감했고 위대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가 어떤 이념을 가졌냐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한 업적들을 기억하고 그가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 독립운동가였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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