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룬 영화 <말모이> 후기 및 정보


조선어학회-앞에서-찍은-배우들-사진
영화 말모이 포스터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배우 유해진, 윤계상 주연의 영화 '말모이'입니다. '말모이'는 '말을 모은다'라는 의미입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일제는 민족 말살 정치를 통해 우리 민족을 더욱 심하게 탄압하며 한글로 지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우리말과 우리 역사 교육을 금지시켰습니다. 영화는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말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942년에 일어난 '조선어 학회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말모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말모이 시놉시스

전과자였던 김판수는 자신의 과거를 들켜 일하던 극장에서 쫓겨난다. 한편 사전 편찬 작업을 위해 경성역에 온 류정환은 돈이 필요했던 김판수에 의해 가방을 소매치기 당한다. 이후 김판수는 조갑윤의 도움으로 조선어 학회의 일꾼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곳에서 자신이 가방을 훔쳤던 류정환과 마주치게 되고 김판수는 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하지만 조갑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다. 김판수는 사실 문맹이었고 조선어학회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 틈틈이 한글을 배운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사전을 완성하기 위한 작업은 쉽지 않았다. 류정환은 친일파가 된 아버지 류완택의 도움으로 겨우 일제 경찰의 압박을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제 경찰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사전 편찬을 위한 원고를 모두 압수하고 조갑윤이 체포된다. 이후 조갑윤이 출소하지만 일제의 고문으로 결국 사망하게 된다. 류정환은 조선어 학회 활동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조갑윤의 아내가 조갑윤이 죽기 전 남겨둔 필사본을 건네준다. 류정환은 다시 사전 편찬 활동을 이어가지만 일본 경찰들의 방해는 계속되었다. 류정환과 김판수는 결국 일본 경찰에 덜미를 붙잡혀 도망치게 된다. 류정환에게 원고를 넘겨받아 도망치던 김판수는 기차를 타기 위해 경성역에 잠복하던 중 경찰에 발각된다. 김판수는 급한 마음에 서울역 창고에 원고 가방을 던져버리고 도망가지만 결국 일본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다. 해방 후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출소한 류정환이 김판수가 숨긴 원고를 발견해 사전을 완성한다.

한글 연구와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노력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순수 우리말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였다. 그러나 한글이 실생활에 사용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조선 후기 고종 시기가 되어서야 한글 사용이 점차 늘어나 한문을 혼용하지 않고 순수 한글만을 사용하는 문자 생활이 학대되었다. 한글 사용이 늘어나 한글 연구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게 되면서 주시경과 지석영을 필두로 1907년에 국가에서 만든 한글 연구 기관이 '국문 연구소'이다. 중종 시기 이후 400년 만에 만들어진 한글을 연구하는 국가기관이었다. 국가의 주도하에 한글 연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1908년에는 주시경을 주축으로 '국어 연구학회'라는 민간 학술단체도 설립된다. '국어 연구학회'는 1921년 '조선어 연구회'로 명칭을 변경한다. 조선어 연구회는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지정했다. 이는 현재 양력 10월 9일로 지정된 '한글날'의 시초이다. 또 1927년에는 '한글'이라는 잡지를 간행하기 시작했다. 이 잡지는 '조선어 학회'와 '한글 학회'를 통해서 계속 이어져 발간되었고 현재까지도 발행되고 있다. 활동을 이어가던 '조선어 연구회'는 일제의 방해로 1931년에 '조선어 학회'로 다시 명칭을 바꾸었다. '조선어 학회'라는 명칭은 광복 이후에도 계속 사용하다가 1949년 '한글 학회'로 개칭되었고, 이 명칭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조선어 학회'는 표준어를 제정하고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여 국민들이 한글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가장 큰 업적은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위한 노력이었는데 아쉽게도 이 작업 중에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전 편찬 작업은 중단되었다. '우리말 큰사전'은 해방 이후 한글 학회를 통해 1957년에 총 6권으로 완간되어 지금도 배포 중이다. 우리말 연구에 대표 인물인 주시경이 1911년 최초의 현대적인 국어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때 국어사전의 이름이 '말모이'였다. 그러나 일제의 방해로 중단되었고 주시경이 1914년에 별세하며 국어사전의 편찬이 늦어진 것이다.

조선어학회 사건

1930년대 후반 일제는 민족 말살 정치의 일환으로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고 조선어 사용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여고생이 조선어로 대화하다가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조사를 받게 된다. 조사 과정 중 조선어 학회의 활동에 대해 알게 된 일본 경찰이 조선어 학회를 독립운동단체로 지정한 뒤 그 관련자들을 일제히 검거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조선어 학회의 회원이었던 이윤재와 한징이 일본 경찰의 갖은 고문과 추위,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감옥에서 사망한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회원들이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 사건으로 조선어 학회는 해산하게되었고 당시 작업중이던 '우리말 큰 사전' 편찬 작업이 중단되게 된다. 증거물로 압수되었던 사전 편찬 원고는 해방 후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었고 이후 '우리말 큰 사전'이 편찬된다. 일제의 만행으로 우리 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우리 민족을 탄압하려하였으나 우리 선조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한글을 지켜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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