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덕혜옹주> 리뷰 및 실제 역사와 차이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주인공이-뒤돌아보는-모습
덕혜옹주 포스터

영화 '덕혜옹주는'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인 덕혜옹주를 연기한 배우 손예진의 연기가 매우 훌륭해 극찬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실제 그녀의 삶과 다른 부분들이 많이 포함되어있지만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감동적인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고종 황제의 늦둥이 딸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1912년 고종과 고종의 후궁이었던 양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고종이 59세의 나이에 얻은 늦둥이 딸이었다. '옹주'는 왕과 후궁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뜻한다. 덕혜라는 이름은 1921년에 이복오빠인 순종이 지어준 이름이며 그 이전에는 따로 이름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덕혜옹주는 늦둥이 딸이라는 이유로 고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종은 덕혜옹주를 위해 궁 안에 황실 최초의 유치원을 만들고 덕혜옹주가 교육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일제는 대한제국 황실의 명맥을 끊기 위해 덕혜옹주를 황실 호적에 올려주지 않으려 했으나 고종이 직접 나서서 덕혜옹주를 황실 호적에 올렸다. 고종은 덕혜옹주가 8살 때, 황실의 시종이었던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을 시켰다. 당시 대한제국 황족들은 대부분 일본에 볼모로 끌려갔는데 김장한과의 약혼은 덕혜옹주가 볼모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종 황제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고종의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약혼이 무효화된다. 이후 결국 덕혜옹주도 13살의 나이로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가게 된다.

덕혜옹주의 기구한 운명

이미 볼모로 일본에서 지내던 영친왕 부부는 덕혜옹주와 함께 지내길 원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덕혜옹주는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일본 황족과 귀족 자제들이 다니던 학교에 입학한 덕혜옹주는 조선 황족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학교 생활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인 고종황제의 사망으로 자신도 독살당할 것이라는 불안함에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된다. 뒤이어 어머니까지 병환으로 사망하면서 덕혜옹주는 몽유병과 조현병과 같은 정신병을 겪게 된다. 정신병이 어느 정도 완화될 무렵 데이 메이 황후의 주선으로 소 다케유키와 원치 않는 혼인을 하게 된다. 결혼 이후 딸을 출산하였으나 출산 이후 정신병이 재발하였고 이로 인해 부부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 무렵 일제는 패망하게 되었고 신분 강등된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게 된다. 10년간 어려운 생계에도 덕혜옹주를 보살피던 소 다케유키는 결국 그녀와 이혼을 한다. 1962년, 일본에 특파원으로 머물던 김을한이 덕혜옹주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김을한은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박정희에게 사정하여 덕혜옹주를 한국으로 귀국시킨다. 한국으로 돌아온 덕혜옹주는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지만 창덕궁에 들러서는 옛 기억 때문인지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덕혜옹주는 이후 죽을 때까지 간간히 정신을 차릴 뿐 끝내 정신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1989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영화와 실제 역사의 차이점

영화에서 덕혜옹주는 어린 시절부터 조국의 독립을 위해 국민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로 표현된다. 그러나 실제 덕혜옹주는 독립운동과는 연관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사실 덕혜옹주를 비롯한 대한제국 황족들은 특정 몇몇을 제외하고는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사에 접어들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 그녀를 비롯한 대한제국 황족들이 일본에서 심한 차별을 당했다고 묘사되는 부분도 과대 해석된 것이다. 식민지 시기 다른 국민들에 비해 덕혜옹주나 황족들은 오히려 황족이라는 이유로 일본에게 특별 대우를 많이 받았다. 이렇듯 영화와 사실이 다른 부분이 많아서 영화 개봉 당시 작품이 역사왜곡을 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애초에 영화는 사실보다는 덕혜옹주라는 소재만을 가지고 이야기는 창작하여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려한 것 같다. 그러나 영화가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과도한 역사 왜곡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이 되며 이런 과도한 왜곡은 오히려 덕혜옹주라는 실제 인물을 그저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한 요소로 사용했다거나 덕혜옹주의 삶 자체를 깎아내리는 게 아닐까 싶다. 기구한 운명을 살았던 덕혜옹주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한제국의 황실이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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